[인터뷰] 경험을 나누다 ⑦ 석교마을미디어 김수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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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경험을 나누다 ⑦ 석교마을미디어 김수경 대표
  • 대전마을미디어
  • 승인 2020.01.1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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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산이 품은 마을의 오래된 미래"

- 개발이 부른 소외에도 마을을 지키는 주민들
- 경제세대·정보 격차 속에서 건져 올린 '사람'
- 도서관, 마을학교, 공유 공간 그리고 미디어
-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 한명쯤은 있어줘야죠"

# 남은 사람들과 이주한 사람들

  예로부터 사람들은 뒤로 산이나 언덕이 있고, 앞으로 강이나 개울이 흐르는 곳을 가장 이상적인 택지로 여겼다.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본다고 해서 풍수지리에서는 배산임수(背山臨水)라 불렀다. 전통적인 자연부락 대부분이 이 원칙에 따라 마을을 형성했다. 산은 바람을 막아주고 물은 집으로 전해지는 산천의 생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과학적 택지 요건을 갖춘 마을은 살기 좋은 곳으로 통했다. 대전시 중구에 위치한 석교동이 그랬다. 뒤로는 보문산, 앞으로는 대전의 3대 하천 중 하나인 대전천이 흐르고 있다. 대전천은 중구와 동구 사이를 흐르는 국가하천으로 보문산 좌측 만인산에 발원지 봉수레미골이 있다.
  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맞은편 천동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석교동을 살기 좋은 마을이라 불렀다. 보문산 맞은편으로 아파트 산이 조성되자 짐을 싸는 사람이 늘었다. 누군가 떠난 자리엔 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오랜 기간 터를 잡고 살아왔던 터줏대감들과 형편이 어려워 석교동으로 이사 온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생겼다. 고령층이 많다 보니 경로당만 10곳이고 어른들을 위한 공간도 많았지만,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공간은 드물었다. 이대로 마을을 둬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석교동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세대 간, 이웃 간 소통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뜻 있는 주민들이 2014년 석교마을미디어센터를 만들었다. 2011년 마을신문 사전준비 과정을 거쳐 2012년 기자단을 구성하고 마을신문 창간 준비호를 펴냈다. 이후 청소년과 어린이기자단 교육을 진행하고 2013년 석교마을신문 창간호를 발행했다. 2014년에는 영상제작 교육, 석교마을뉴스제작, 마을신문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2015년 이후 현재까지 외부 지원 없이 마을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 신문을 만들자 마을이 보였다

  석교마을미디어가 다루는 핵심 콘텐츠는 사람이다. 마을활동가, 다문화가정, 청소년, 마을 어르신까지 석교동의 어제와 오늘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뉴스의 주인공이 됐다. 마을신문을 만들기 전에는 도서관이 활동의 중심을 이뤘다. 알짬어린이도서관을 주축으로 마을학교 실험이 진행됐고 마을신문을 만들면서 주변 이웃들과 함께하는 활동이 본격화됐다.
  김수경 대표는 신문을 만들면서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어떻게 마을을 만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이때 커졌다. 인터뷰를 하고 싶으면 언제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가가면 받아줄 줄 알았다. 그러나 주민들은 쉽게 마음의 빗장을 열어주지 않았다. 우리끼리 행복한 것이 아니라 이웃도 다 같이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질 즈음, ‘마을에서 지금 행복한 아이가 나중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미디어가 주민과 주민 사이에 소통의 다리를 놓아줄 것이라는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때로는 주민 갈등의 중재 역할을 하고, 마을 문제 해결을 위한 신문고도 됐다. 자연스럽게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도 증가했다. 석교마을신문이 비판기능을 회복할수록 불편해하는 사람도 생겼다. 주민 의견도 수렴하지 않고 수억 원을 들여 리모델링한 어린이놀이터 사례가 대표적이다.
  도서관과 마을 학교를 중심으로 청소년과 어른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설문 조사를 했다. 아이들이 디자인한 놀이터 그림까지 신문에 실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과정의 문제를 지적하자 불편하다는 피드백이 왔다.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소식지 말고 언론이 돼야 한다. 창간준비호만 세 번을 내면서 100명의 주민에게 물었을 때도 “가려운 곳을 긁어 주고 문제를 개선해나가는 언론이 돼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많았다. 어르신들이 많이 이용하는 보문산 약수터는 식수로서 안전할까 하는 의문을 제기해 수질검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소신은 지켰지만 7년이라는 시간을 건너오며 많은 부침을 겪었다. 8면이던 신문은 4면으로 줄었다. 외부 지원 없이 정기적으로 신문 제작비를 마련하는 일이 녹록지 않았다. 마을의 원로들은 자문위원단을 꾸려 경제적으로 도움을 줬고, 주민들은 3천 원부터 할 수 있는 만큼 소정의 후원자가 돼 줬다. 하지만 초반에 결합했던 주민들의 상당수는 취업으로 인해 마을을 떠났다. 떠나는 사람보다 들어오는 사람이 적다 보니 신문 제작 참여 인원도 줄어들었다. 현재 협력하는 사람은 15명 정도. 사업 초기에는 어린이, 청소년, 어르신 기자단까지 있었지만, 지금은 여력이 없다. 그렇다고 아쉬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엔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 디자이너가 고맙게도 마을신문의 편집을 맡아 돕고 있고 어린이기자단 아이들은 청소년이 되어서도 마을의 자원으로 남아 활동하고 있다.
  아이들은 지금도 김수경 대표를 ‘물안경’이라고 부른다. 이름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지만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별명이라서 좋아한다. 어린 시절 물을 무서워했던 김수경 대표는 물안경을 차면 비로소 안정감을 찾았다. 누군가에게 물안경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은 지금도 친구처럼 물안경을 찾는다.

 

# 좋은 어른 한 명쯤은 있어줘야죠

“아이들을 시골에서 키우고 싶었어요. 완전히 시골로 갈 수는 없어서 근교에 있는 석교동으로 이사를 왔죠.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힘들 때도 웃는 제가 좋았어요. 저는 어른들도 친구처럼 지냈어요. 맹랑한 말에도 네가 뭘 아느냐고 무시하지 않고 기특해하셨죠. 제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마을 아이들에게는 힘이 되는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좋은 어른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내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김수경 대표는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봉사를 하면서 처음 마을을 만났다. 맞벌이를 하고 있었는데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마주한 아이들의 눈빛에서 결핍을 발견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을 내려놓고 마을학교 책임자가 됐다. 마을학교는 석교동 아이들에게 선물이었다.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행복한 순간을 채워갔다. 아이들은 공동체 속에서 키워야 한다는 판단은 옳았다. 마을여행을 만들고 청소년문화카페를 운영하는 모든 실험 속에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행복해졌다. 아이들과 함께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물안경’ 김수경 대표는 몇 해 전부터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같이 고민해주고, 어려울 때 손 내밀면 기꺼이 잡아주고, 중요한 선택을 할 때 조언해줄 수 있는 좋은 어른이 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
  올해 풀뿌리 마을미디어 활성화 사업은 지속 가능한 미디어 제작 환경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청소년과 주민기자 교육을 통해 역량을 강화할 수 있었고 세대별 특성에 맞는 미디어를 활용해 마을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익혔다. 가장 큰 수확은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영상제작 교육에 참여했던 청소년들은 카메라로 상인들을 기록하며 마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앞으로 마을미디어 운영이 안정화되면 상근활동가와 운영위원회 확대, 후원자 관리를 통해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장기적으로 마을미디어를 위한 마을기업도 설립할 계획이다. 올해 마을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네 번이나 공간을 옮겼던 알짬어린이도서관이 공유공간 ‘잇다’에 둥지를 틀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자리 잡은 잇다는 마을의 사랑방이 되고 있다. 불이 켜져 있으면 밤마실을 오는 분들도 있고, 누군가 일을 하고 있겠거니 싶어 먹을거리를 건네기도 한다. 오가는 발걸음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정보 교류도 활발해졌다. 잇다가 문을 연 이후 사람과 사람, 세대를 잇겠다던 석교마을미디어센터의 활동도 더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김수경 대표는 마을신문을 공감이라고 정의했다. 소통은 돌봄을 위한 과정이다. 내 아이와 마을의 아이를 돌보고 이웃을 돌보고 스스로 돌봄 받기 위한 공감의 과정. 힘듦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연약한 부분을 위로해주는 역할,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를 함성으로 바꾸는 역할, 그런 석교마을미디어센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살기 좋고 행복했던 마을, 석교동이 다시 한번 변화를 앞두고 있다. 변화의 동력은 개발이 아닌 사람이다. 보문산이 품은 오래된 마을 석교동에서 주민들이 다시 마을의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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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터뷰는 『2019 대전미디어를 개합니다』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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