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영어 영역이 이른바 ‘불수능’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영어권 주요 외신들마저 한국의 입시 난이도에 주목하고 있다. 1등급 비율이 3.11%에 그치며 2018학년도 절대평가 전환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이번 시험은 단순히 국내 입시 문제를 넘어 한국 교육 시스템 전반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입시 과열 양상과 맞물려, 한편에서는 K-컬처의 확산과 함께 한국 대학의 국제화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대 문자 해독 수준”… 외신도 놀란 수능 난이도

현지시간 12일, 영국 BBC는 한국의 수능 영어 영역이 “악명 높다(notorious)”고 소개하며 이번 시험의 살인적인 난이도를 집중 조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부 수험생들은 이번 시험을 두고 “고대 문자를 해독하는 것 같다”거나 “미친 듯이 어렵다”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BBC는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법철학을 다룬 34번 문항과 비디오 게임 용어를 활용한 39번 문항을 대표적인 고난도 사례로 꼽았다.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 등지에서도 39번 문항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해당 문제를 접한 이용자들은 “개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끔찍한 작문”이라거나 “허세 부리는 말장난(pretentious wordplay)”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는 변별력을 확보하려는 출제 의도가 원어민들조차 이해하기 힘든 난해한 문장 구조로 귀결되었음을 시사한다.

삼성의 원동력인가, 과도한 경쟁인가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역시 “한국의 ‘미친’ 대입 영어 시험을 통과할 수 있겠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34, 35, 39번 문항을 직접 소개하며 독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댓글은 “이런 대입 시험이 한국에 삼성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입학 시험과 유사하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원어민임에도 첫 문제조차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조적인 반응도 잇따랐다. 뉴욕타임스(NYT) 또한 독자들에게 직접 문제를 풀어보라고 제안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외신들은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 한국 사회 특유의 학벌주의를 지목했다. 가디언은 수능이 명문대 입학을 위한 필수 관문이자 높은 사회적 지위, 경제적 안정, 심지어 좋은 결혼을 위한 통로로 여겨진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과도하게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이 청소년 우울증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우려 섞인 시선도 덧붙였다. 결국 지난 10일,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영어 영역 난이도 조절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그는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심려를 끼치고 대입 전형에 혼란을 초래한 점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K-컬처 열풍 속 대학의 변화와 한계

살인적인 입시 경쟁이 한국 교육의 한 단면이라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대학의 국제화라는 새로운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K-컬처의 세계적인 인기에 힘입어 한국에서의 삶을 경험하고자 하는 외국인 청년들이 급증하고 있으며, 대학들 역시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2000년대 초반 본격화된 고등교육의 국제화 노력 덕분에 현재 수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정규 과정이나 교환 학생 프로그램으로 한국에서 수학하고 있다.

그러나 양적 팽창에 비해 질적인 내실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 3일 코리아타임스는 서울대학교의 외국인 교수들이 겪는 어려움을 다룬 기사를 통해 한국 학계의 폐쇄성을 지적했다. ‘내국인 중심(insider-dominated)’의 학문 풍토 속에서 외국인 교수들이 겪는 장벽은 비단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며, 국내 대학 전반에 걸친 공통된 과제로 남아있다.

진정한 글로벌 캠퍼스를 위한 균형 찾기

한국 대학의 국제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접근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국제화가 곧 한국의 학문적 전통을 완전히 뒤집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세계를 향해 문을 여는 균형 잡힌 시각이 요구된다.

입시 단계에서는 변별력이라는 미명 하에 과도하게 비틀린 영어 문제를 출제하고, 대학 내부에서는 여전히 폐쇄적인 문화를 고수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교육 선진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 내에서 운영되지만 세계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입시 제도의 합리성 회복과 더불어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학문 생태계 조성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