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헤센주에 위치한 국립 자동차 박물관 ‘로 컬렉션(The Loh Collection)’에서 열린 ‘카 디자인 이벤트’가 세계 자동차 디자인 전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특히 올해 행사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제네시스, 현대, 기아 브랜드가 각각의 철학이 담긴 콘셉트카와 헤리티지 모델을 유럽 최초로 공개하며 한국 자동차 디자인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했습니다.
제네시스 X 그란 쿠페 콘셉트: 유럽 무대 첫선
행사의 서막은 제네시스 브랜드가 열었습니다. 전설적인 레이서 재키 익스(Jacky Ickx)와 현대자동차그룹의 최고 디자인 책임자(CCO)인 루크 동커볼케(Luc Donckerwolke) 사장이 제네시스 G90을 기반으로 한 우아한 다크 그린 메탈릭 색상의 쿠페, ‘제네시스 X 그란 쿠페 콘셉트’를 타고 등장하자 현장에 모인 60여 명의 GCOTY 및 WCOTY 심사위원단을 포함한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로 이들을 맞이했습니다. 이 모델은 유럽에서 처음으로 실물이 공개되는 자리였습니다.
전설과 거장의 만남: 헤리티지와 미래 비전
르망 24시 6회 우승에 빛나는 재키 익스는 제네시스의 역동성과 헤리티지를 대표하는 브랜드 앰버서더로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는 “이 콘셉트카는 레이싱 DNA와 미래 모빌리티 사이의 다리를 놓는 모델”이라며, “자동차는 빠르고 아름다운 것을 넘어, 실제 주행감과 인체공학적 설계, 그리고 일상에서의 실용성까지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존재는 차량에 화려함을 더할 뿐만 아니라, 제네시스가 추구하는 성능에 대한 진정성을 입증했습니다.
이어 루크 동커볼케 사장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디자인 철학인 ‘역동적인 우아함(Athletic Elegance)’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더 길어진 보닛, 유려하게 뻗은 루프 라인, 넓은 차체는 그랜드 쿠페의 고전적인 비율을 미래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두 줄의 램프와 브랜드 고유의 크레스트 그릴로 대표되는 전면부 디자인은 제네시스 전 모델을 관통하는 시각적 시그니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지속가능성을 담은 럭셔리
동커볼케 사장은 특히 소재와 지속가능성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X 그란 쿠페 콘셉트’의 실내는 크롬을 사용하지 않고 무두질한 가죽, 재활용된 천연 소재로 마감되었으며, 지중해 풍경에서 영감을 얻은 색상 조합으로 꾸며졌습니다. 이는 미학적 만족감과 촉감을 넘어 환경적 책임까지 고려한 디자인입니다. 동커볼케 사장은 이 콘셉트카가 “향후 10년의 제네시스 디자인에 대한 비전”이며, 재키 익스는 “신념을 담은 퍼포먼스의 선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모델의 소량 생산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습니다.
현대의 재발견: 헤리티지 시리즈 그랜저
현대자동차는 브랜드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헤리티지 시리즈’의 일환인 ‘헤리티지 시리즈 그랜저’를 선보였습니다. 이 모델은 1986년에 출시된 1세대 그랜저의 35주년을 기념하는 레스토모드(Restomod) 차량입니다. 1세대 그랜저의 각진 디자인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아이오닉 모델에서 선보인 ‘파라메트릭 픽셀’ 디자인의 LED 램프를 전면과 후면에 적용하여 미래적인 느낌을 더했습니다. 실내는 기존의 계기판 대신 넓은 가로형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고, 지속가능한 소재인 벨루어와 가죽, 앰비언트 라이트가 적용된 패널, 그리고 현대적인 라운지를 연상시키는 통합 사운드 시스템으로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했습니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그리다
이 그랜저 모델은 양산을 염두에 둔 프로젝트는 아닙니다. 현대자동차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브랜드의 역사를 어떻게 존중하고, 이를 전동화 및 디지털 시대의 미래 비전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는 미래지향적 시각이 강한 한국의 문화 속에서, 디자인팀이 스스로의 풍부한 역사적 자산을 돌아보고 탐구하도록 독려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철학은 1세대 모델의 ‘오페라 윈도우’와 원-스포크 스티어링 휠 디자인을 계승한 현행 7세대 그랜저에도 반영되어 있으며, 이 날 행사장에는 7세대 그랜저도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기아의 과거와 미래: 봉고와 PV5의 조우
현대자동차그룹의 세 번째 브랜드인 기아 역시 유럽 최초로 공개하는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바로 역사적인 ‘기아마스터 봉고9 슈퍼디럭스’ 모델입니다. 오늘날까지도 봉고 시리즈는 대한민국 산업 발전의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전시된 차량은 간결한 기본 형태와 세련된 디테일이 돋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기아의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인 PBV(목적 기반 모빌리티) 라인업의 첫 전기 밴 ‘PV5’가 나란히 전시되어, 기아 브랜드의 과거와 미래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