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경제는 경기 부진과 먹거리 물가 폭등이 맞물리면서 서민들의 지갑이 굳게 닫힌 상태다. 내수 침체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정부는 거시 경제의 불안 요소를 잠재우고 복합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핵심 자원인 원유 등 에너지 공급망 확보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생필품은 외면, 자동차는 불티… 심화되는 소비 양극화
실물 경제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소비 지표는 연일 경고음을 내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1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실질적인 체감 소비를 나타내는 ‘승용차 제외 소매판매액’은 지난해 대비 0.7% 감소했다. 0.4% 줄어들었던 지난 2022년 이후 무려 4년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이는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0년 이래 가장 긴 둔화 흐름이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서민들의 고단한 삶이 지표에 그대로 묻어난다. 신발 소비가 7.5% 급감하며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고, 가구(-6.9%), 화장품(-5.6%), 가전제품(-4.9%), 서적 및 문구(-3.6%), 컴퓨터(-3.2%)가 줄줄이 뒤를 이었다.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생활 요소인 의복과 음식료품 소비마저 각각 0.9%, **1%**씩 줄었다. 지난해 상반기를 강타했던 탄핵 정국의 여파로 소비 심리가 꽁꽁 얼어붙은 데다, 하반기 정부가 소비 쿠폰을 발행하며 민생 회복의 불씨를 살리려 했음에도 반등을 이끌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승용차 시장은 나홀로 호황을 누렸다. 고가품인 승용차 판매가 **11%**나 껑충 뛰면서, 이를 포함한 전체 소매판매액 지수는 4년 만에 0.5% 증가하며 플러스 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 승용차 판매 증가율은 2020년(16.3%)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필수적인 생필품 지갑은 닫으면서도 비싼 자동차는 기꺼이 구매하는 뚜렷한 ‘K자형 양극화’ 현상이 현재 소비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서비스업 상황 역시 녹록지 않다. 서비스 소비의 동향을 보여주는 숙박 및 음식점업의 지난해 생산(불변)은 전년 대비 1% 줄어들며, -1.8%를 기록했던 2024년에 이어 2년째 마이너스 늪에 빠졌다. 분기별 흐름을 보면 1분기(-3.6%)와 2분기(-2.1%)에 크게 부진했던 수치가 3분기(1.5%)와 4분기(0.3%) 들어 조금씩 늘어나는 기미를 보였으나, 온전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기엔 이른 시점이다.
호르무즈 리스크 뚫었다… 원유 2억 7천만 배럴 확보
이처럼 팍팍해진 내수 경기의 기저에는 불안정한 글로벌 에너지 수급과 이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이 자리 잡고 있다. 이에 정부는 물가 안정의 뇌관인 에너지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 발 빠른 경제 외교에 돌입했다.
전략적 경제 협력을 위한 특사 자격으로 중동과 중앙아시아 4개국(카자흐스탄,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을 순방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달 15일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의미 있는 성과를 내놓았다. 강 실장은 지난달 7일부터 14일까지 이어진 순방 결과를 상세히 설명하며, “올해 연말까지 원유 2억 7,300만 배럴과 나프타 210만 톤 도입을 최종 확정 지었다”고 발표했다.
확보된 물량은 국가 경제가 추가적인 비상조치 없이도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전망이다. 지난해 소비 기준을 적용했을 때, 원유 2억 7,300만 배럴은 3개월 이상을 거뜬히 버틸 수 있는 양이며 나프타 210만 톤은 약 한 달 치 수입 물량에 해당한다. 특히 강 실장은 “이번에 확보한 원유와 나프타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리스크와 전혀 무관한 대체 공급망을 통해 들어온다”며,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 국내 수급을 안정시키는 데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기여를 할 것임을 강조했다.
위기 속 빛 발한 ‘경제 외교’… 유가 상한제 조정 논의도
단순한 당장의 물량 확보를 넘어, 장기적인 국가 안보 체계 구축을 위한 논의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등 주요 산유국들과 호르무즈 해협 외곽 지역에 대체 송유관 및 석유 비축 기지를 건설하는 방안을 두고 깊이 있는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 해협 봉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지정학적 리스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구상이다. 마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국내 비축 기지 확장 재원까지 넉넉히 마련된 상황이라, 향후 주요 산유국과의 공동 비축 사업은 비상시 원유 공급의 안정성을 담보하며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순방 과정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적극적인 정상 외교도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은 각국에 직접 보낸 친서를 통해 현재 진행 중인 중동 분쟁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하는 동시에, 한국 국민들의 진심 어린 위로와 연대의 뜻을 전했다. 나아가 집단지성을 발휘해 글로벌 에너지 안보 위기를 공동으로 극복해 나가자는 강력한 협력의 메시지를 타전했다.